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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푸트니크 쇼크

 

(스푸트니크는 러시아어로 동반자라는 뜻)

 

1957104, 소련이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 1호발사에 성공하면서 미국 정부와 미국인들이 겪은 과학기술·교육 부문의거대한 쇼크

 

미국의 군사제도부터 교육제도까지 바꾸게한 사건으로 미국 역사상 미국이 이처럼 멘붕한 사건은 없다.

 

 

때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냉전이 시작된 시기

 

19세기부터 200여년간 세계를 지배했던 유럽 국가들이 2번의 세계대전으로 힘을 잃었지만 유럽 국가들 중 유일하게 러시아(소련)는 힘이 더욱더 강해졌다.

 

미국은 직감적으로 이제 자신들의 최대의 적이 소련이라는 사실을 느꼈으며

 

중부 유럽에 진군해 있는 소련의 강력한 붉은 군대의 탱크 웨이브에 미국 기업의 주요 수출 시장인유럽 시장을 잃지 않기 위해 공산주의의 확산을 막기로 한다.

 

하지만 유럽은 예전의 유럽이 아니였다.

 

영국은 해군 밖에 없는 반쪽 짜리 군대였으며 유럽의 육군을 자처하던 프랑스는 독일 육군에 의해 붕괴되었고 그 독일 육군은 결국 소련 육군에게 붕괴된다.

 

유럽은 스스로를 소련으로부터 지킬 힘이 없었다.

 

처칠은 철의 장막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트루먼 대통령에게 유럽을 보호해줄 것을 요청했으며 소련 육군이 유럽을 침공한다면 전유럽을 포기하거나 소련 육군의 진격지에 핵폭탄을 투하하는 것뿐이라고 미국을 설득했다.

 

거기다 소련이 핵 개발에 성공, 핵보유국이 되면서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구권 국가들은 핵보유국인 소련과의직접적인 대립은 피하고 있었지만그래도 은근히 미국쪽의 파워를 더 높게 치고 있었다.

 

실제로도 미국이 더 우위에 있는게 맞았다

 

당시 미국은 해군국이였고 소련은 육군국이였다.

 

해군력의 우위로인해 미국은 해군국으로 항공모함 전단을 필두로해서 소련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을 시도를 할 수 있었지만 소련은 미국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을 할 수 없었다.

 

전차 웨이브로 밀어버릴 수 있는 건 소련 영토와 붙어 있는 유라시아 대륙뿐

 

소련은 해군력에 열세로 인해 아메리카 대륙에 있는 미국 영토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이 불가능 했던 것

 

<아이젠하워>

 

그래서 당시 소련은 미국에 대한 엄청난 공포를 지니고 있었다.

 

미국 항모에서 발진한 폭격기가 언제 소련 영토에 핵폭탄을 떨어트릴지 모른다는..

 

소련 정부는 해군력에 열세와 상관없이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신무기 개발을 지시하고 소련 군부는 그 신무기를찾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소련 군부는 그 신무기로 핵폭탄을 장착했으며 대륙을 넘어 날아가는 미사일을 생각해냈다바로 오늘날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이라고 불리는 바로 그 무기다.

 

194710월에 첫번째 소련제 V-2 로켓의 시험발사가 성공했지만이미 미국은 V-2를 수백 발 가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미국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소련에겐 무언가 더 엄청난 것이 필요했다.

 

그리고 마침 소련에는 한 천재 과학자가 있었다.

 

인류가 우주 시대를 맞이할 수 있게 만든 천재 공학자 코룔료프라는 사내가

 

오른쪽이 코롤료프

세르게이 코롤료프는 독일 V-2로켓의 설계를 그대로 카피해 사정거리가 278kmR1로켓과 사정거리가 556kmR2로켓을 개발했다.

 

그러나 R2 로켓은 V-2로켓의 길이를 14m에서 16.9m로 늘려 연료를 더 채운 것에 불과했다.

 

사실, 코롤료프는 전쟁 무기 개발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는 그저 로켓과 우주가 좋아서 연구를 하는 것일 뿐이었다.

 

사실 그는 대륙간 탄도탄보단인공위성을 쏘아올리고 싶어했다그가 생각하기에 인공위성을 우주에 올린다면 그만큼 그의 조국에 애국하는 것도 없을 것 같았다.

 

그를 위해서는 데이터 수집이 필요했기 때문에, 그의 연구팀은 곧 동물을 이용한 고고도 비행 실험을 시작했다.

 

탑재물은 러시아인들이 친근하게 생각하는 개가 주로 이용됐다이러한 고고도 실험들은 우주비행이 그리 위험하지 않다는 것을 입증했다.

 

그러나 몇 분 동안의 실험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던 코룔로프는지구궤도를 끊임없이 돌 수 있는 인공위성을 발사하자고 사실 스탈린 시절부터 소련에 제안했었다.

 

이러한 제안은 스탈린의 아들인 바실리 스탈린 소련 과학 아카데미 소장의 화를 돋우었다. 바실리는 인공위성 제안서를 제출한 코룔료프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다른 사람이 추상적인 계획을 세워 시간을 낭비할지라도 동무는 공공요원이기 때문에 국가방위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데 관심을 가져야 하오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제트 전투기지 어리석은 스푸트니크(동반자)가 아니란 말이오."

 

그렇게 인공위성 발사계획은 잠시 잊혀지는 듯 했으나흐루쇼프가 서기장이 된 몇 년 뒤에 다시 빛을 보게 된다.

 

한편, V-2로켓 기술의 습득을 완료한 소련의 다음 목표는 서유럽까지 핵탄두를 나를 수 있는 중거리 탄도미사일을 개발하는 것이었다.

 

서방에서 'SS-3 샤이스터'(이란 뜻)라고 부른 이 중거리 탄도미사일의 사정거리는 1,204km, 1955년 실전에 배치됐다.

 

19576월에는 1Mt의 핵탄두를 탑재할 수 있는 사정거리 1,800kmSS-4 샌들 중거리 탄도미사일이 완성됐다.

 

이로서 미국이 핵무기를 배치했던 서유럽, 서아시아, 동북아시아 지역은 모두 소련의 미사일 사정거리 내로 들어오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순 없었다

 

그러나 소련은 슬슬 탄도미사일 개발에 한참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고 1955년소련은인공위성 개발을 준비하기 시작한다.

 

그 해 1월 소련은 중앙아시아 지역(현 카자흐스탄)에 위치한 퇴레탐에 대륙간 탄도 미사일 시험장을 건설하고,

 

마침내 195783Mt의 수소폭탄을 7,000km 떨어진 곳까지 나를 수 있는 세계 최초의 대륙간 탄도 미사일인 R-7을 시험발사하는데 성공했다.

 

(참고로 현재 중국 최고의 탄도미사일이탑재 가능한 최대 탄두가 1Mt의 핵탄두, 코룔로프는 60년전에 현재의 중국도 탑재 못시키는 폭탄을 탑재시킬 수 있는미사일을 만든 것)

 

9월 두 번째 시험발사는 당 제1서기였던 니키타 흐루쇼프가 지켜보는 가운데 이뤄졌다평소 인공위성을 발사하고 싶어했던 코롤료프에게는 절호의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소련이 한창 발사체 개발에서 성과를 거두고 있을 즈음, 미국은 공군에서 개발하고 있던 아틀라스 시험이 계속 실패, 개발 일정은 하염없이 지체되어 있었다.

 

이를 안 코롤료프는 흐루쇼프에게 미국을 엿 먹이기위해 R-7(위성을 쏠 때는 A로켓이라고 부름)을 이용해 인공위성을 발사하자고 설득했다.

 

게다가 미국이 최초의 인공위성으로 준비하고 있던 뱅가드 위성을 쏘아올리기로 약속한 날이 불과 몇 달 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마침내, 흐루쇼프는 인공위성 발사계획을 승인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코롤료프의 기술자들이 문제였다.

 

그들은 이 임무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코롤료프는 결국 팀 멤버들을 하나하나 설득시켰다.

 

당시 코롤료프가 그의 팀 멤버 중 한명이었던 유리 실라예프에게 스푸트니크는 가능하다는 것을 설득하기 위해 말한 것 중 명언이 하나 있다.

 

 

코롤료프: 달을 보곤 하는가?

 

실라예프: , 봅니다.

 

코롤료프: 스푸트니크가 그것처럼 보일 거야, 조금 작은 별처럼 보이긴 하겠지만.

 

BBC 다큐 'The Planets'

 

인공위성은 몇 주도 안 되어 준비되었고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스푸트니크 1호는 라디오 송신장치를 단 지름이 58cm인 공 모양의 인공위성이었다.

 

무게는 83.6kg.

 

그리고 코롤료프는 그의 아들같은 첫 인공위성에 '동반자'라는 뜻의 '스푸트니크'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코룔로프와 그의 팀은 결국 인공위성을 완성하고 우주로 쏘아보낼 시기에 대한 카운트 다운만 남기고 있었다.

 

같은 시기 소련의 서기장 니키타 흐류쇼프는 자신들이 이미 미국을 초토화 시킬 수 있는 신무기를 개발 , 보유하고 있다고 떠들고 있었다.

 

그 신무기란 바로 핵탄두를 장착한 대륙간 탄도탄을 말하는 것

 

그러나 미국은 아직 자신들도 만들지 못한 것을 소련을 만들었을리가 없다며 단순한 허풍으로 취급했다.

 

그리고 흐류쇼프는 자신들이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는 것을 증명하기위해 발사시기만 기다리고 있던 인공위성에발사명령을 하달했다.

 

모스크바 시간으로 1957104일 오후 1028분 바이코누르 우주기지에서 A로켓 엔진이 불을 내뿜으며 스푸트니크를 우주로 올려보내기 시작했고5분 후 인간이 만든 최초의 인공 위성은 궤도에 자리를 잡고 최초의 메시지를 지구로 보내왔다.

 

흐루쇼프가 인공위성 발사계획을 승인 했을때 프로파간다의 목적으로 위성이 발신하는 신호는 암호화하지 말라고 연구팀에 명령했고,

 

전세계의 사람들은 우주시대의 개막을 알리는"........."소리의 첫 신호를 들을 수 있었다

 

당시 뉴욕 타임스 기사

 

같은 시기 워싱턴에서 소련 대사관에서는 세계 각국의 과학자들이 모여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파티를 즐기고 있었다.

 

월요일부터 시작된 '국제지구관측해'(IGY)를 기념한 '로켓과 인공위성'이라는 학술세미나였는데당시는 냉전시대라 동서의 과학자가 만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에 과학자들은 세미나 후에도 이야기를 나누며 즐기고 있었다.

 

당시 소련은 자신들의 우주계획을 1급 비밀에 부치고 있었기 때문에, 서방 과학자들은 저마다 소련 과학자들 옆에 붙어 진척 상황에 대해 묻고 있었다.

 

그러던 중 술에 취한 듯한 한 러시아 과학자가

 

"우리는 조만간 인공위성을 발사할 것."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조만간이 대체 얼마나 되냐?"고 미국 과학자가 묻자

 

그는 "1주일 , 아무리 늦어도한달안."이라고 답변했다.

 

그러자 장내는 한바탕 웃음바다가 됐다

 

"1주일이라고?"

 

미국 과학자들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고작 농업국가 밖에 안 되는 소련 따위가어떻게 우리 미국보다 먼저 인공위성을 발사하겠어?"

 

라고들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다....

 

한편, 연회를 즐기고 있던 과학자들 틈바구니에는 뉴욕타임스의 기자인 월터 설리번도 끼여 있었다.

 

파티가 한참 무르익을 무렵 그는 신문사로부터 전화 한통을 받았다.

 

바로 러시아가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 1호를 발사해서 성공했다는...

 

설리번은 파티장으로 헐레벌떡 뛰어들어가 사람들에게 말했다.

 

"그게 정말로 올라갔어!"

 

"루스끼들이 망할 스푸트니크를 띄웠다고!!!!"

 

그때 누군가가 옥상으로 올라가 인공위성을 보자고 제안했다.

 

그러자 사람들은 너나없이 대사관 지붕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맨눈으로 볼 수 없는 작은 인공위성인데도 불구하고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스푸트니크 1호는 그들이 파티를 벌이고 있는 동안 그들의 머리 위를 2번이나 지났다

 

그리고 또 같은 해 1957113, 미국은 다시 한 번 패닉에 빠진다.

 

소련이 세계 최초로 우주로 생명체를 보냈기 때문이다.

 

비록 그게 사람이 아니고 개 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소련과 미국의 기술력 차이를 세계 만방에 보여주는 것이었다

 

1957년 타임지

 

이전까지 소련의 흐루쇼프는 "수소폭탄을 실은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지만

 

미국을 비롯한 자본주의진영은 단순한 체제선전용 허풍으로 치부하고 있었다.

 

그런데 소련이 인공위성의 발사에 성공하자

 

미국을 비롯한 서방자본주의국가들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소련이 세계 최초로 인공위성을 쏘아올렸다는 사실 뿐만 아니라

 

대륙을 넘어설 수 있는 로켓 기술을 소련이 미국보다 먼저 보유하면서 핵탄두를 장착한 소련의 미사일이선제공격을 가할 수 있다는 사실이 공포와 위기감을 준 것이다.

 

흐루쵸프가 말하고 다녔던 미국을 초토화할 수 있는 신무기와 그 신무기를 증명하는 스푸트니크 1호 발사 성공은 그를 1957년 타임지 올해의 인물로 선정되게 만든다.

 

이륙하자마자 폭발하는 뱅가드

 

실패한 미국 뱅가드

 

정치적으로 큰 타격을 입은 미국 정부는준비중이던 뱅가드 로켓을 이용한 인공위성의 발사를 서둘러 강행한다.

 

그러나 1957126일에 세계 각국의 언론을 불러놓고 발사된 뱅가드 로켓은 고작 1미터 상승하더니 폭싹 주저앉으며 폭발한다.

 

대실패를 놓고 미국 언론도 조소와 비난을 하기에 이르렀고뱅가드가 폭발하고 며칠이 지난 후, 소련은 공식적으로 조문을 보냈다.

 

그 조문에는 흐루쇼프의

 

'뱅가드(전위부대)라고 부르지 말고 리어가드(후방부대)로 부르는게 좋겠다' 는 통렬한 조롱까지 실려있었다

 

망신살 톡톡히 당한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결국 폰 브라운의 레드스톤팀에게 인공위성을 쏘아 올릴것을 명령한다.

 

2차대전 이후 미국에 건너와서 눈치밥 먹으며 육군의 탄도미사일연구소(레드스톤)에 은거하던 폰 브라운의 로켓팀은 다시금 기회를 맞고 

 

1958131일레드스톤 미사일을 개량한 주노-1 로켓으로 미국 최초의 인공위성 익스플로러(Explorer) 1호를 발사하는데 성공한다.

미국 최초의 인공위성 익스플로러 1호 무게는 약 5kg 83kg인 스푸트니크 1호에 비해 매우 작으며 

 

익스플로러 1호보다도 두 달 먼저 성공한 세계 최초로 생명체인개를 싣고 우주로간 스푸트니크 2호의 무게 500kg 에 비하면 100분의 1 밖에 안되었다.

 

흐류쇼프는 소련이 500kg 를 우주로 쏟아올리고 두 달이나 지나서 쏟아올린 자칭 세계 최고의 기술 국가인 미국의 인공위성이 겨우 5kg란 사실에 미국이 드디어 오렌지를 우주로 쏟아올린 것을 축하한다는 조문을 보낸다.

 

당시 천조국 대통령이던 아이젠하워 

 

이 위성이 발사되었던 당시, 미국과 소련은 냉전이라 불리던 준-전시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미국 국민들은 스푸트니크 발사 이후 패닉에 빠졌다.

 

미국 국민들이 세계 최고인 줄 알았던 조국 미국이 세계 최고가 아니란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는데,

 

"소련이 우주에 익스플로러의 100배 무게인 인공위성을 올릴 수 있다면,핵무기를 우주로 보내 우리 머리 위에 떨어트릴 수도 있지 않은가?"가 그 이유다.

 

이렇게 되면 미국은 꼼짝도 못하고 소련에게 굴복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걸 실현시킨 병기가 바로 대륙간 탄도미사일

 

미국 정부는 소련이 인공위성을 쏟아 올린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핵탄두를 쏟아올리진 못할 것이라고 미국 국민들을 안심시켰다.

 

소련이 익스플로러 1호의 100배인 무려 500kg 짜리 위성을 성공시킨 것은 사실이지만

 

500kg를 간신히(?) 올린 소련이 1톤이 넘어가는 핵탄두를 우주로 쏘는 건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한 것.

 

그러나.....

 

R-7

 

 

 

 

R-7

(인류 최초의 대륙간 탄도미사일이자 인류 최초의 위성인 스푸트니크 1호를 우주로 올린 최초의 대륙간 탄도 미사일 완성체 이 한마디로 설명가능한 발사체다)

 

2016년 현재 중국 최고의 대륙간 탄도미사일인 DF-31 보다 탄두 중량이 무려 3배나 높다.

 

이게 1957년에 나온 것,

 

현재 중국의 미사일 기술은아무리 높게 쳐줘도 1960년대 러시아 기술에 못미친다는 평가를 받는 데 그만큼 코룔로프가 대단하단 것..

 

더 놀라운건 2016년인 현재도 우주로 가는 유일한 방법이 이 R-7을 타는 거다

 

미국 나사 대원들 조차 코룔로프가 만든 소유즈 우주선+R-7 을 타고 우주로 가는 걸 선호하고

 

현재 그렇게 우주로 가고있다.

 

가장 싸고 가장 안전하고 가장신뢰도 있으며 가장 내구성도 좋은 발사체..

 

그야말로 미스터리한 물건

 

개발자는 소련의 천재 공학자 코룔로프

 

 

R-71958515일 무려 1327kg 짜리 위성을 우주로 보내버린다.

 

이에 미국은 또 난리가 난다.

 

핵폭탄은 500kg 짜리 위성보다 무거워서 소련이 위성을 우주로 보낸 발사체에

 

핵폭탄을 장착해서 미국으로 보내는건 무리라고 미국 정부가 말해왔는 데

 

소련이 무려 1.3톤 짜리 위성을 우주로 올리면서

 

다시한번 미국 국민들은 멘붕....

 

미국 정부가 "핵탄두를 쏠려면 최소 1톤은 탑재할 수 있어야돼!" 했는데

 

1.3톤을 우주에올리는 걸 성공했으니

 

미국 정부 스스로 소련은 미국에 핵탄두를 보낼 수 있다라는걸 인정한셈...

 

참고로 1.3톤인스푸트니크 3호가 발사되고 나서 두 달 후인 1958726일에 발사한

 

미국익스플로러 4호의 무게가 25.5kg.....(255kg이 아니라 25.5kg...)

 

이후 소련은 스푸트니크에 이어서 최초의 유인 우주선인 보스토크 계획을 추진하고

 

결국 세계 최초의 우주인인 유리 가가린을 우주로 보낸다.

 

달에 세계 최초로 탐사 로봇도 보내고 세계 최초로 우주 유영도 성공하고..

 

이후 미국은 국가적 수치를 씻기 위해 아폴로 계획을 추진했고,

 

이 계획이 성공해서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할 때까지

 

모든 우주 세계 최초 타이틀을 소련에 뺏기는 등'스푸트니크 쇼크'에서 헤어나오지 못했으며,

 

미국,소련 간의 우주 경쟁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후 약 50년간,

 

인류는 미국과 소련에 의해 사상 최고의 첨단 과학 기술 발전을 맛보게 된다.

 

 

P.S

 

911 역시 미국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줬지만 충격의 강도가 다르다

 

911 사건이 터진후에 지구상에서 미국이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미국 국민은 없지만

 

스푸트니크 쇼크 때 미국 국민들은미국이 소련의 선제 핵미사일 공격으로 지구상에서 언제 사라질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스푸트니크 쇼크로 엄청난 충격을 받은 미국은

 

자신들이 왜 소련에게 졌는 가? 를 연구하기 시작했고

 

바로 미국의 천재들이 소련 천재들에게 밀려서라는 판단

 

실제로 당시 소련에는 코롤료프급 천재가 많았다.

 

특히 코롤료프 , 첼로메이 , 글루쉬코 , 얀켈 ,켈드쉬 , 쿠르차토프 , 란다우 , 콜모고로프 등

 

모두다 인류역사에길이 남을 천재들이다.

 

코롤료프 사후에도 첼로메이와 얀겔은 서로 자신이 개발한 로켓을 ICBM으로 제식 채용해달라고 싸웠고,

 

이를 중재하기 위해므스티슬라프 켈듸쉬가 나섰으나 두 사람이 만든 로켓이 모두 시대를 초월한 고성능인지라 우열을 가리지 못하고 모두 제식 채용되는 결과가 나왔다.

 

그러나 이러한 중복 투자는 소련 국방예산에 큰 부담을 지워주는 결과가...

 

2차 대전전국토가 폐허가 되고 3천만~4천만이라는 국민들이 죽은 소련이냉전 초기에 우주 분야에서 미국을 압살하고

 

냉전 중기에도 우주 기술에서 미국에 근소 우위를 유지한 건

 

우주 분야 4대 천재라 불리는코롤료프 , 첼로메이 , 글루쉬코 , 얀켈이 그만큼 대단했기 때문

 

, 미국의 교육 체계가 소련의 교육 체계에 밀려서란 판단을 내린다.

 

그로인해 기존 미국의 교육 방식이였던

 

학생들이 웃고 즐기던 미국의 교육 체계가

 

..진 교육 체계로 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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